어디 자리잡는 곳만 그러하랴. 자라는 동안의 환경은 또 어떤지. 노간주나무가 있는 곳은
사시사철 바람만 불고 물이라곤 빗물밖에 없다. 서울에서는 도봉산 포대능선에서
노간주나무를 볼 수 있는데, 나무가 서 있는 곳을 보면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이런 곳에서도 생명이 뿌리 내릴 수 있다는 사실에 말이다.

하지만 척박한 곳에서 자란다는 것만으로는 이 노간주나무를 다 설명할 수 없다.
나는 이 나무를 볼 때마다 기특하단 생각보다는 어쩌면 이렇게 바보 같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노간주나무는 제 코가 석 자면서 남 생각 먼저하는 놈이다.
이른 봄 자하문 터널을 지나 인왕산 산자락 상명대 삼거리를 지나 본 적이 있는지.
그곳에 가면 노간주나무와 함께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노간주나무가 보인다 싶으면 그 옆에서 영락없이 진달래꽃이 얼굴을 들이 밀고 있는거다.
생긴것도 비슷하지 않은데 두 나무가 어떻게 무리를 이뤄 한데 자라고 있는 걸까.
그건 다 노간주나무 덕이다. 쉽게 말해 노간주나무가 진달래를 먹여 살리는 거다.

이른 봄 바위 틈에 먼저 자리를 잡는 건 노간주나무다. 그러면 어디선가 흙과 먼지가 흘러 들어와
그 견고한 돌 위에 작은 토양이 생긴다. 아니 자연적으로 생겼다기 보다, 일단 뿌리를 내린
노간주나무가 제가 살아가기 위해 토양을 마련했다고 해야 옳을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마련한 토양 위에 어느새 진달래 씨가 날아드는 것이다.
마치 노간주나무가 먼저 자리잡길 기다렸다는 듯.
노간주나무 입장에서야 저 먹고 살기도 빠듯한 형편에 갑작스럽게 찾아 든 손님이
영 불쾌할 법도 하다. 그러나 노간주나무는 찾아 든 손님을 절대 식객 취급하지 않는다.
아무리 흉년이 들어도 찾아오는 거지에게 눌은밥 한사발이라도 들려 보내는 그 옛날
어머니 인심처럼 넉넉한 마음으로 맞아들인다. 그리고는 제 몸 웅크려 자리를 내주고
더불어 함께 산다. 어떨 땐 객식구가 더 많아 진달래 틈에 노간주가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처음 노간주나무를 봤을 땐 그랬다. 참 바보 같다고, 제 코가 석 자면서 남 다 퍼주는
놈이 어디 있냐고,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내게는 노간주나무의 그런 바보 같은 모습이
오히려 사랑스럽다.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제 것만 챙기는 사람보단 형편이 어려워도 주변 사람 도와 주며
허허거리는 사람이 더 정겹지 않은가. 겉보기엔 답답해 보일지 몰라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결국에 다시 찾게 되는 건 그런 바보같은 사람이다.

가끔 사람과의 일로 괴로울때, 뭔가 억울한 일이 생길 때 나는 노간주나무를 떠올린다.
"일평생 불평 않고 그렇게 사는 놈도 있는데" 라고 스스로 자위하며 말이다.

도봉산에 있는 노간주나무는 오늘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좀 바보 같으면 어떻습니까? 좀 손해 보면 어떻습니까?
어차피 더불어 사는 세상 아닙니까?"

"나무 의사" 우종영의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중에서...
도봉산 포대능선

Janne Lucas - Boeves Psalm